(9)마음이 가는 대로 걸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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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마음이 가는 대로 걸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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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마음이 가는 대로 걸어가라

7-1코스 월드컵 경기장~외돌개 올레(총 16km : 4~5시간)

2011년 05월 03일 (화) 19:05:27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월산동→엉또 폭포→고근산 입구→고근산 뒷면→서호마을→하논 분화구 입구→삼매봉 입구→외돌개

월드컵 경기장 앞에서 고근산을 바라본다. 고근산에 가려 한라산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서 만큼은 고근산이 높고 한라산이 낮다. 원근법상 높이 396미터에 불과한 고근산이 형처럼 크게 보이고 오히려 제주의 주산主山인 한라산은 높이가 1,950미터인데도 동생처럼 작게 보인다.


현대연립주택 옆으로 난 길로 걷다 보면 한라산은 정면에 있다. 뛰어가면 금방이라도 가 닿을 듯하다. 왼쪽 능선이 굴곡진 데 반해 오른쪽 능선은 대체로 반듯하게 흘러내려오고 있다. 보노라면 미끄럼을 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들길을 걷다 숙대낭삼나무 사이로 바라보면 월드컵 경기장 앞바다에 범섬이 떠 있다. 왼쪽 저만치에는 문섬이 보인다. 별다른 풍광이 없어도 바다에 섬 하나 떠 있는 것만으로 사방천지가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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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또 폭포로 가는 길

▲ 엉또폭포에서 돌아오는 목책길 바닥에는 동백꽃잎들이 붉은 선혈을 흘리고 있었다. 여기서 엉또 폭포는 그리 멀지 않다.


도심지에 가까이 자리잡은 엉또 폭포의 거대한 물줄기가 땅으로 내리꽂히면 대장관을 연출한다. 그러나 이런 구경을 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엉또 폭포는 평소에는 메마른 바위 절벽만이 드러나 있어 눈을 감고 상상으로만 그려볼 수밖에 없다.


서귀포시 서호동 시오름에서 발원해 고근산의 서쪽을 감아돌다가 엉또 폭포에 이르러 50미터 수직 바위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수의 대장관을 보려면 한라산 중산간에 70밀리미터 이상 비가 온 뒤라야 한다.


어느 날 봄비가 내린다는 기상 예보를 듣고 나는 서둘러 배낭을 챙겨 비행기를 탔다. 머릿속으로 눈이 녹아내린 물과 봄비가 합쳐지면 폭포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어렵지 않게 나왔다.


이날 나는 엉또 폭포가 내려다보이는 과수원을 지나가다가 동력운반기를 밀고 있는 촌로를 우연히 만나 급한 마음에 지금 폭포가 터졌는지 물어보았다. 촌로는 가당치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제 오면 폭포를 볼 수 있나요?”

“장마철에 오면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럼 폭포를 볼 수 있는 날이 1년 중에 며칠이나 되나요?”

“이레 정도나 될까.”


촌로와 헤어지고 폭포로 걸어갔다. 아닌 게 아니라 막상 폭포에 도착하고 보니 나의 생각이 어림 반 푼 어치도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도 보고 싶은 폭포는 여전히 메말라 있었고, 나는 혼자서 머리를 쥐어박다 터덜터덜 힘없이 걸어 나왔다. 돌아오는 목책길 바닥에는 동백꽃잎들이 붉은 선혈을 흘리고 있었다. 동백꽃잎도 뜨거운 심장으로 살고 있는데 나는 머리로만 살아왔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거대한 물줄기 쏟아내는 엉또 폭포의 대장관


그 이후에도 나는 몇 번 제주를 찾았다.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으로 비가 억수로 내려 주기만을 손꼽아 빌었다. 택시를 타고 가다가도 운전기사에게 엉또 폭포에 물이 내릴 것 같으냐고 물으면 애기 오줌 싸듯 내리는 봄비로 어떻게 폭포를 보려 하느냐며 핀잔만 들을 뿐이었다.


그런데 서울로 올라오고 몇 주가 지난 뒤 제주지방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떴다. 이번에도 서둘러 배낭을 챙겼다. 그러고는 무작정 비행기를 탔다. 왠지 폭포수를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제주공항에 내리자마자 리무진버스를 타고 월드컵 경기장으로 향했다.


월드컵 경기장에서 엉또 폭포는 걸어서 1시간 정도 되는 거리다. 나는 비옷을 걸치며 만일 폭포를 보지 못한다고 해도 실망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빗줄기는 굵었다 가늘었다를 반복하며 쉼 없이 내렸다. 하지만 이 정도의 비로는 폭포가 터지기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폭포를 볼 수 없더라도 폭포를 보러 가는 이 순간을 사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 봄날 내내 아무 말이 없던 폭포가 산짐승처럼 포효하고 있었다. 혼자 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대장관이었다. 숲은 폭포수가 뿜어내는 물안개로 자욱해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엉또 폭포가 저 멀리 보일 즈음 탱크가 지나가는 소리처럼 우르릉 우르릉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인가 가만히 귀기울여 보니 바로 옆의 냇물이 터져 아래로 쏟아지는 소리였다. 바삐 앞으로 몇 걸음 더 걸어가자 저 멀리 우거진 숲속에서 하얗고 널따란 물줄기가 내리꽂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비옷을 벗어젖히며 달려 나갔다. 엉또 폭포 앞에 도착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하늘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마구 쏟아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봄날 내내 아무 말이 없던 폭포가 산짐승처럼 포효하고 있었다. 혼자 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대장관이었다. 숲은 폭포수가 뿜어내는 물안개로 자욱해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래, 가슴으로 생각하는 거야.’ 나는 잔머리를 굴리지 않고 비행기를 탄 내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가 다시 폭포를 구경하기를 여러 번 했다. 그래도 싫증이 나지 않는 대장관이었다.


엉또 폭포 위에는 인조 동굴이 하나 있다. 안이 너무나 껌껌해 몇 발 옮기다 뒤돌아 나오게 되는데 5미터는 더 될 것 같다. 1970년대 육지에서 온 과수원 주인이 도둑이 들 것을 염려해 높은 곳에다 감귤 저장 창고로 지은 것이다. 나는 이곳에 여러 번 다니면서 궁금한 마음에 굴 안으로 몇 발자국 떼어 보았지만 그때마다 너무 깜깜해 무섬증에 돌아나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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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근산과 설문대할망


엉또 폭포를 빠져나오면 동백나무 가로수가 나그네를 배웅한다. 초겨울 붉은 꽃을 만난다. 고근산에 오르니 나무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한참 오르다 보니 허기도 느껴진다. 꼭대기에 다다르니 푸른빛이 완연한 서귀포 앞바다와 비닐하우스가 들어서 있는 밭들이 눈에 들어왔다.


날이 좋을 때는 저 멀리 지귀도에서부터 마라도까지의 풍광들이 손금처럼 선명하게 보이고 밤이 되면 보석처럼 빛나는 고깃배의 집어등과 서귀포 칠십리의 야경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최적지로 손꼽힌다.


고근산에는 제주의 1만 8,000신들 중 대표적 여신인 설문대할망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온다. 키가 매우 컸던 설문대할망은 한라산을 베개 삼고 고근산 분화구에 엉덩이를 얹고 범섬에 다리를 걸치고 누워서 물장구를 쳤다고 한다. 이 얼마나 무변광대한 상상력인가. 백록담과 고근산, 범섬이 거의 일직선상에 놓여 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비록 세상 어디에나 있는 거인 설화이긴 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거대한 여신이 이 작은 섬나라 제주의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고근산에는 주변 풍광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전망대의 망원렌즈를 통해 들여다보면 풍광들이 큼직큼직하게 다가선다.

야트막한 분화구를 에두른 소나무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다 위로 띄엄띄엄 섶섬, 문섬, 범섬이 올려져 있다. 맑은 날에는 손에 닿을 듯 영롱하다. 오름 분화구를 반쯤 돌다 앞에 세워진 망원렌즈를 들여다보면 한라산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동생 같았던 한라산이 이제는 안방 한가운데 앉아 있는 아버지와 같다.


한라산은 제주섬의 중앙에 솟아 있다. 제주시에서 볼 때 한라산은 아침녘 반듯반듯 이불을 개지 않으면 혼낼 것 같은 아버지와 같은 느낌이고 서귀포에서 볼 때는 오래간만에 집으로 돌아온 자식을 따뜻하게 안아 주는 품 넓은 어머니와 같은 느낌이다.


한라산은 지형적으로 볼 때 서울과 일직선에 놓여 있어 한반도로 치고 올라가는 태풍을 중국이나 일본 쪽으로 틀어 주는 역할을 한다. 덕분에 웬만한 태풍이 아니고서는 예로부터 한양을 바로 강타하지 못했다. 그래서 혹자는 한양에 도성이 오랫동안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명당이라서가 아니라 천리 떨어진 곳에 한라산이라는 대장군이 버티고 서서 온몸으로 바람을 막고 서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풀이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농반진반으로 서울시가 제주도에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밭담 위에 가지째 올려놓은 ‘공짜 귤’

 ▲ 밭담 위에 귤나무 가지들이 놓여 있다. 마을을 지나가는 올레꾼들이 목도 축이고 허기라도 달래라고 밭담 위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하얀 구름으로 머릿수건을 하고 있던 한라산은 고근산을 내려와 서호마을로 들어설 즈음 제 모습을 다 드러낸다. 늦가을 서호마을에는 부드러운 햇빛이 가득하고 귤나무에는 노란 귤들이 가지가 휘어지도록 자락자락 달려 있다.


밭담 위에 귤나무 가지들이 놓여 있다. 귤밭에서 일하던 아지망아주머니이 손짓하며 먹으라고 한다. 마을을 지나가는 올레꾼들이 목도 축이고 허기라도 달래라고 밭담 위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마침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픈 터라 귤은 용천수처럼 시원했다. 허겁지겁 까먹은 귤이 대여섯 개는 넘었다. 그제서야 눈이 밝아지고 세상이 보였다.

 ▲ 동네 할망이 논두렁을 따라 종종걸음으로 마실을 가고 있다.

어느새 동양 최대의 마르형 분화구인 하논 분화구에 다다랐다.

하논 분화구에는 꽤 넓은 농지가 조성되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논은 한논에서 유래됐는데 한은 크다는 의미다. 따라서 하논은 즉 큰논大畓이다.


하논은 밭농사가 대부분인 제주도에서 한경면 용수리와 함께 논농사가 가능한 2대 지역 중 하나다. 추수가 끝난 논밭은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다. 제주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논두렁길을 걸어 본다. 동네 할망이 논두렁을 따라 종종걸음으로 마실을 가고 있다.


*이 글은 강민철 작가의 제주올레 기행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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