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노래하고 꽃들이 춤을 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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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노래하고 꽃들이 춤을 추네

YBN 0 17677 기사승인-

 

바다가 노래하고 꽃들이 춤을 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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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코스 고내~광령 올레(총 17.8km : 5~6시간)

2012년 01월 19일 (목) 10:01:50

고내 포구-신엄 포구-수산봉 둘레길-수산저수지 둑방길-항파두리 항몽 유적지-고성 숲길-광령 초등학교-광령1리사무소

▲ 신엄 도대불에서 내려다본 해안도로.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있고 바다와 땅 사이에 길이 있다. 고내 포구를 걷다 보면 저 멀리 수평선 위로 사다리꼴 모양으로 오똑 나온 섬 하나가 희미하게 보인다. 관탈섬. 관탈섬은 추자도와 제주 본섬 사이에 있는 섬이다. 제주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하는 섬이라 할 수 있다.

제주는 한양에서 가장 먼 유배지다. 광해군, 김정희, 송시열 등을 비롯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명사들이 제주에 머물렀다. 정치유배인 수만도 200여 명에 이른다. 일찍이 제주를 100년 동안 지배했던 몽골의 왕실마저도 눈 밖에 난 왕족이나 왕권을 위협하는 인물들을 이곳 제주로 유배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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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자의 이정표 ‘관탈섬’

그 옛날 제주로 유배 가던 선비들은 완도에서 배를 타고 추자를 거쳐 제주로 향하다가 문득, 시퍼런 물 위에 외롭게 떠 있는 섬을 보게 된다. 섬에 가까이 갈수록 파도는 세지고 나룻배는 일엽편주一葉片舟처럼 좌우로 출렁인다. ‘이게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선비의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선비는 머리에 썼던 관을 벗고 무릎을 꿇어 북쪽을 향해 절을 한다.

 

아무리 충절이라 하더라도 그 역시 한 인간일진대 어찌 임금을 향한 단심丹心으로만 똘똘 뭉칠 수 있으랴. 텅 빈 가슴속으로 파도쳐 오는 분노와 원망과 한탄을 억누르기 위해 무릎을 끓고 바닥에 엎드렸는지 모른다.

 

태산처럼 파도가 몰아치는 관탈섬을 지날 때 유배인은 세상에 대한 자그마한 욕심이라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바닷물이 들어와 배가 가라앉을라치면 가장 먼저 내던져야 할 것은 쓸모 없는 짐짝이 아니라 오랫동안 가슴속에 품어 왔던 꿈과 희망일 것이다. 망망대해처럼 언제 다시 돌아갈지 모를 유배길에 오른 선비에게 가장 무거운 건 꿈과 희망이지 않는가.

 

관탈섬을 바라보며 시인 채바다의 싯귀를 되뇌어 본다.

 

 

이곳에 올 때는

 

옷을 벗어 던져라

 

권좌에서 입었던 옷을 벗어라

 

지위도 버리고 계급도 버려라

 

 

아스팔트 길을 따라 나 있던 올레길은 어느새 바다와 바짝 붙어 있다. 간간이 갯바람이 옷깃 사이로 불어 온다. 신엄 포구에는 보재기들이 조업을 마치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밤바다를 밝혔던 도대불이 서 있다.

 

▲ 갯바위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 1930년대 중엄리 사람들의 식수원으로 이용했던 ‘새물’을 지나면 동글동글한 바윗돌들이 바닷가에 널려 있다. 한쪽에선 어떻게 건너갔는지 강태공들이 바다 한가운데 있는 조그만 갯바위에 올라서서 고기를 낚고 있다.

길은 넓고 평평한 암반이 깔려져 있는 구엄리 바닷가로 이어진다. 이 동네사람들은 소금 빌레라 부른다. 소금 빌레의 길이는 해안가를 따라 300미터에 이르고 그 폭이 50미터나 된다. 면적이 4,845제곱미터에 이른다. 이곳에서 생산된 돌소금은 모양이 굵고 넓적한 데다 맛과 색깔이 뛰어나 1950년대 들어 생업수단이 변하기 전까지만 해도 중산간 마을의 농작물과 물물교환이 이루어질 만큼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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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은 다시 바다를 등지고 내륙을 향한다. 대문 너머 마을길로 마실 나와 있던 닭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꽁지를 추켜올리며 부리나케 달아난다. 봄 햇살이 가득 내려앉은 밭에서는 아지망(아주머니)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며 마늘을 캐고 있다. 마을을 벗어나면 수산봉이 보인다. 산정상에 물이 고인다 하여 물메오름이라 불렸다.

 

수산봉을 빙 돌아 걸어가면 저 너머에 바다처럼 드넓은 수산 저수지가 보인다. 일주도로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둑방에 가려 제주에 사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곳이다. 허리둘레가 5.8미터이고 키가 12.5미터에 달하는 400년된 곰솔이 물속으로 가지가 척척 휘어진 채 저수지를 지키고 서 있다. 한겨울에 눈이 내리면 마치 백곰이 저수지 물을 마시는 형상처럼 보인다고 해서 곰솔이라 부른다. 저 멀리 둑방 위로 아이들이 부모 뒤를 따르며 발장난을 치는 모습이 아스라이 보인다. 나도 둑방길을 따라 걷는다. 띄엄띄엄 놓여 있는 시멘트 의자에 잠시 앉아 물빛을 바라보노라면 눈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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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늘을 캐는 마을 주민들

 

구불구불 이어진 밭길을 지나 늘씬늘씬한 소나무들이 들어서 있는 오솔길을 걷다 보면 토성의 흔적이 보인다. 삼별초의 마지막 보루이었던 항파두리다. 고려 조정이 몽골의 침입을 받고 굴욕적인 강화를 맺자 삼별초는 이에 반대하며 끝까지 몽골에 대항해 싸울 것을 주장한다. 항파두리는 삼별초가 강화도와 진도를 거쳐 제주도로 내려와 2년 6개월 동안 여·몽 연합군에 맞서 싸우던 곳이다.

 

1271년 진도에서 남은 병사를 이끌고 제주로 내려온 삼별초의 김통정 장군은 불굴의 항전 정신을 불사르며 항파두리성을 쌓는다. 바깥쪽은 토성土城으로 되어 있고 안쪽으로는 석성石城으로 되어 있다. 토성의 길이는 장장 6킬로미터에 달했다. 김통정 장군은 보통 때 나무를 태운 재를 토성 위에 깔아 두었다가 적이 침입하면 말꼬리에 대나무 빗자루를 매달아 달림으로써 성 안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 일종의 연막술을 펼친 것이다.

 

그러나 1273년 고려의 김방경 장군과 몽골의 혼도가 이끄는 1만 2,000명의 여·몽 연합군에 의해 항파두리성은 함락되고 만다. 김통정 장군은 부하 70여 명을 데리고 오름으로 피신해 마지막 일전을 벌이지만 싸움에 패배하고 만다. 이때 오름이 피로 붉게 물들었다 하여 붉은 오름이라 불린다. 삼별초를 이끌었던 김통정 장군 역시 끝내 한라산 기슭에서 자결한 채 발견된다.

 

이로써 장장 40년에 걸친 삼별초의 대몽 항전은 막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100년 동안에 걸친 몽골의 제주 지배를 알리는 또 하나의 신호탄이기도 했다.

 

 

“이 몽고놈의 자식……”

 

 

그 후 무능한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난 죄밖에 없는 제주인들은 몽골족의 군마에 짓밟히며 갖은 수모와 고통을 겪어야 했다. 나는 가끔 몽골의 제주 지배를 얘기할 때 버릇처럼 “제주에서 가장 심한 욕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곤 한다. 제주에서 가장 심한 욕은 개새끼, 소새끼도 아니다. ‘몽고놈의 자식’이다. 조금 더 성적인 표현을 가미해 욕할 때는 ‘몽고놈의 X으로 맹그라분 놈’이다. 제주에선 도둑놈, 살인자보다 더 나쁜 놈이 ‘몽고놈’이다. 지금도 할머니 할아버지들 사이에서 ‘몽고놈의 자식’이란 욕은 현재형이다. 말싸움이 막장으로 치달았을 때 한방 날리는 메가톤급 욕이다. 몽골의 말발굽 아래 얼마나 피멍이 들었으면 800년이 지났어도 ‘몽고놈의 자식’ 하며 치를 떨까. 몽고놈도 몽고놈이지만 나라가 못나도 너무 못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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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랗게 피어난 유채꽃. 제주섬에도 항몽유적지에도 기다리던 봄이 왔다. 이제 곧 당신에게도 봄이 올 것이다.

말끔이 단장된 항파두리를 걸어 나오다 보면 밭길 옆으로 두런두런 피어 있는 들꽃들이 허허로움을 달래 주는 듯하다. 고성 숲길을 지나면 올레길은 우불구불 광령리로 이어진다.

 

샛노란 유채꽃이 온천지를 환하게 밝힌다. 마음이 달뜬다. 나의 입가에도 웃음이 번진다. 샛노란 유채밭을 지나면 가슴마저 노랗게 물드는 듯하고 무릎까지 자라난 보리밭을 지나면 가슴속이 녹색 물결로 출렁인다. 포물선을 그으며 이어진 길가에는 연분홍 벚꽃들이 꽃망울을 틔우고 손이 닿지 않은 가시덤불에는 민들레가 수줍게 고개를 내민다. 새들이 나뭇가지를 튕기며 날아오른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옥색 빛깔이다. 통통배처럼 뭉게구름 두어 점 느릿느릿 흘러간다. 아무도 없는 길. 나 홀로 걸어간다.

 

 

*이 글은 강민철 작가의 제주올레 기행산문집 <올레 감수광(컬처플러스 간)>을 축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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